문학

[스크랩] 13* 박상순 / 흙

김현곡 2014. 8. 4. 15:08

[시의향기.13]

 

 

 

박 상 순

 

흙을 주문한다. 한 상자. 밀봉된 흙덩이가

상자에 담겨 트럭에 실린다.

다리를 건넌다, 비 내리는 거리를 달린다.

 

창가에 항아리가 갈라지며 웃는다.

웃으면서,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한다.

웃는 병에 걸린 이야기.

이야기 병에 걸린 웃음.

 

갈라진 항아리가 웃는 동안, 한 상자.

웃는 병에 걸린 이야기를 웃음소리로 이야기하는 동안, 한 상자.

주문한 흙이, 새들이 훑고 간 웃음 사이로 온다.

이야기 병에 걸린 비의 허리를 자르며 온다.

 

한 상자. 흙이 온다. 무릎을 꿇고

두 팔로 몸을 짚은, 가슴이 두 쪽으로 갈라진 내가

이렇게, 너를 바라보는 동안 흙이 온다.

너에게 뿌릴 한 상자의 흙이 온다.

 

이제 너를 덮을 흙이 내게로 온다.

손가락이 아프다. 왼쪽 끝.

손가락 끝이 아프다. 한쪽 끝.

 

 

등단: 현대문학

게재지: 1991. 작가세계

출처 : 계간 시향
글쓴이 : 오혜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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