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스크랩] 시인의 언어 구사 - 정지용의 경우 -【우리 시의 향기】

김현곡 2016. 3. 2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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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의 향기】

 

시인의 언어 구사 - 정지용의 경우 -

 

유종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는 언어로 빚는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들어서 아는 것과 실천을 통해 그것을 부단히 재확인하는 것은 사뭇 다르다. 독자 편에서도 시 읽기의 과정에서 그 의미를 부단히 검토하고 음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시 읽기에서 우선적으로 강조해야 할 것은 말의 여러 국면에 대한 세심한 검토요 음미이다. 우리에게 외국 시가 어려운 것은 아무래도 낱말의 여러 국면에 대해서 어두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학성의 핵심을 이른바 ‘낯설게 하기’에서 찾은 이론가들이 있었지만 언어적인 국면에서의 ‘낯설게 하기’도 시의 매력의 하나이다. 그런데 세심하게 꼼꼼히 읽지 않으면 그 점이 간과되기 십상이다. 시 읽기의 재미의 하나가 쓰인 말의 이모저모를 음미하는 즐거움이다.

 

20세기 한국의 시인 가운데서 우리말의 발굴과 조직과 세련에서 가장 세심하게 공들여서 독자들을 황홀하게 한 최초의 시인은 정지용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언어 구사는 그의 발명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만큼 전례 없이 창의적이다. 가령 그의 초기 작품인 <슬픈 기차>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우리들의 기차는 아지랑이 남실거리는 섬나라 봄날 왼 하루를 마도로스 파이프로 피우며 간 단 다.

우리들의 기차는 느으릿느으릿 유월소 걸어가듯 걸어 간 단 다.

 

 

이 작품의 무대는 일본이고 바닷가를 달리는 완행 열차의 기차 속에 화자가 타고 있다. ‘아지랑이 남실거리는 섬나라’는 일본일 테고 작품 속에는 일본의 내해(內海)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도 나온다.

때는 봄이다. 완행 열차의 더딘 행보를 시인은 ‘유월소 걸어가듯’ 걸어 간다고 쓰고 있다. 누가 보아도 소는 민첩한 동물은 아니다. 동작이 느리고 새김질하는 것도 아주 여유 있어 보인다. 그 소에 6월을 부쳐 시인은 ‘유월소’라 쓰고 있다. 유월소란 말은 큰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정지용이 발명한 말이다.

여기서의 ‘유월’은 ‘오뉴월’의 그 유월이다. 음력 오뉴월은 한창 무더운 여름철이다. 그래서 ‘오뉴월 더위에는
암소 뿔이 물러 빠진다’는 속담도 있다. ‘여자의 악담에는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란 말도 있다.

한더위에 게으른 소가 걸어가듯 한다고 했으니 더디게가는 완행 열차가 실감된다. ‘유월소’라 씀으로써 음률성에도 도움이 되고 비유의 적정성도 얻고 있다(사실은 음률성에 대한 고려에서 이 말이 발명된 것인지도 모른다). 더디게 가는 실감을 내기 위해서 ‘간 단 다’를 띄어 쓰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대수풀 울타리마다 요염한 관능(官能)과 같은 홍춘(紅椿)이 피맺혀 있다.
마당마다 솜병아리 털이 폭신폭신하고,
지붕마다 연기도 아니뵈는 햇볕이 타고 있다.
오오, 개인 날씨야, 사랑과 같은 어질머리야, 어질머리야.

 

----- ‘슬픈 기차’ 중에서

 

여기 나오는 홍춘(紅椿)은 사실은 일본말이다. 바다가 먼 내륙 지방에서 태어난 정지용은 동백을 알지 못했던 듯 일어를 그대로 도입해 쓰고 있다. 붉게 핀 동백꽃을 ‘요염한 관능과 같은 홍춘이 피맺혀 있다’고 했는데 아주 신선한 비유이다. ‘관능(官能)’이란 말은 감각 기관의 작용을 가리키는, 역시 일제 한자어인데 특히 성적(性的) 감각에 쓰인다. 궁내에서 일하는 나인들에게 성적 자극을 준다고 해서 가령 붉은 모란꽃 같은 것은 옛날 궁궐에서는 심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 대목은 그런 고사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지붕마다 연기도 아니뵈는 햇볕이 타고 있다’는 말할 것도 없이 아지랑이의 낯설게 하기이다. 역시 창의적인 언어 구사여서 명수의 솜씨가 잘 드러난다.

‘어질머리’는 어질병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인데 시어로서 정지용이 발굴하고 발탁한 것이다. 새빨간 동백꽃, 지붕에서 타고 있는 아지랑이를 보니 문득 어질머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솜병아리’는 알에서 깐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병아리를 가리키는데 솜뭉치 같다는 시각 연상에서 나온 말이다. 도시에 사는 젊은 세대에게는 생소한 말이요 점점 사라져가는 말 중의 하나인데 사실적 실감이 배어 있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낱말이 ‘서리까마귀’이다. 노래로 많이 불려 얼마쯤 친숙한 말이 되었다.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향수’ 중에서

 

정지용 시의 백미의 하나인 이 작품은 우리말의 보물 창고이기도 하다.
‘석근’은 한동안 추정과 논란이 많았지만 두시언해(杜詩諺解)에도 나오고 ‘성긴’이란 뜻임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 나오는 ‘서리까마귀’에 대해서도 그 내력을 찾아서 이백의 시에 나오는 ‘霜烏’에서 연원을 찾는 견해도 있다.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말에는 ‘서리병아리’란 말이 있다. 이른 가을에 깬 병아리를 가리키는데 얼마쯤 추위를 타는 듯하다고 해서 맥없이 보이고 추레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솜병아리를 아는 시인이 서리병아리를 몰랐을 리 없다. 서리병아리에서 자연스레 서리까마귀란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아마도 음률상의 배려와 계절을 감안해서 서리까마귀란 말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유월소와 함께 정지용의 창의적 조어라고 생각한다.

‘우지짖다’는 새가 울며 지저귄다는 뜻의 ‘우짖다’의 옛말인 ‘우지지다’의 변형이다. 역시 음률성의 고려에서 골라 썼을 공산이 크다. ‘우짖다’를 창의적으로 변형하여 사용한 경우를 우리는 동시에 발견한다.

 

 

먼산에 진달래
울긋불긋 피었고


보리밭 종달새
우지우지 노래하면


아득한 저 산 너머
고향집 그리워라


버들피리 소리 나는
고향집 그리워라.

 

----- 윤복진, ‘그리운 고향’ 전문

 

광복 직후 외국 가곡에 붙여서 많이 노래했던 동요이다. 작사자가 월북했기 때문에 그후 역시 윤복진 작사의 ‘물새 발자욱’과 함께 금지곡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위의 동시에 ‘우지우지’는 ‘우짖다’의 변형이겠는데 작사자는 혹 의성음으로 적었는지도 모른다. 의성음으로는 정지용의 것이 한결 근사해 보인다.

 

 

삼동 내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어머니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해바른 봄날 한종일두고
모래톱에서 나 홀로 놀자.

 

----- 정지용, ‘종달새’, 전문

 

 

의성음이라고는 하지만 언어 일반의 경우에 기표(記標, signifiant)와 기의(記意, signifié)의 관계가 자의적인 것이듯 소리 표기와 실제 소리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우리는 뻐국새가 ‘뻐국 뻐국’ 운다고 하지만 일본인들은 ‘각꼬 각꼬’ 운다고 한다. 영어에서는 cuckoo라 적는데 이름처럼 ‘쿠쿠우 쿠쿠우’ 운다는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들으면 다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렇긴 하지만 종달새 울음소리를 ‘지리 지리 지리리’라 한 것은 절묘하고 창의적이다. 종달새의 울음소리로 고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후에 창의적인 의성음 창출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정지용이 언어 조탁에 얼마나 힘썼는가 하는 것은 시의 퇴고 과정에 잘드러난다. 김학동 교수의 저서 <정지용 연구>에는 처음 발표 당시와 시집 수록 당시에 달라진 점을 자상하게 대조해 보여 주고 있어 퇴고 과정에 들인 정성을 짐작하게 한다. 가령 2행시 ‘겨울’의 경우를 보자.

 

 

비ㅅ 방울 나리다 누뤼알로 구을러
한밤중 잉크빛 바다를 건늬다.

 

 

이것이 시집에 수록된 전문이다.

1930년 ‘조선지광(朝鮮之光)’에 발표되었을 때는 ‘우박알로 구을너’로 되어 있었다. 우박알을 누뤼알로 고친 것이다. 충청도 지방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우박을 ‘유리’ 또는 ‘누뤼’라 했고 ‘유리 떨어진다’고 흔히 말했다.

한자어인 우박 대신 토박이 사투리를 살린 것이다. 낯선 말 자체가 때로는 시적 효과를 빚는다.

그러나 누뤼알의 경우에는 그 이상의 뜻이 있다. 유음(流音)으로 된 ‘누뤼알’이란 말이 구을러란 말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 ‘누뤼’는 정지용이 애용해서 세 번인가가 시 속에 나온다.

 

 

동해(東海)는 푸른 삽화(揷畵)처럼 옴직 않고
누뤼 알이 참벌처럼 옮겨 간다.

 

----- ‘비로봉’ 중에서

 

 

골작에는 흔히
유성(流星)이 묻힌다.


황혼(黃昏)에
누뤼가 소란히 싸히기도 하고


꽃도
귀향 사는 곳,
절터 드랬는데
바람도 모히지 않고

 

산(山)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 ‘구성동(九城洞)’ 전문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소란히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시간마저 정지한 듯이 보이는 초역사적 공간이 잠정적 낙원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여기 나오는 사슴은 거북이나 두루미처럼 장수 불로를 상징하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이다. 노장적 무위(無爲)의 유토피아를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우박’이 ‘누뤼’가 됨으로써 비경에 어울리는 비의(秘儀)적 함의마저 갖추고 있다.

 

이 밖에도 ‘향수’에 나오는 ‘함부로 쏜 화살’은 ‘ 되는대로 쏜 화살’을 고친 것이요 ‘유리창’에 나오는 ‘물 먹은 별’은 ‘물 어린 별’을 고친 것이다. 조그만 차이지만 사실은 큰 차이이다.

‘적정한 자리에 놓인 적정한 말’이야 말로 시의 핵심을 이루는 것인데 정지용은 그런 면에서 반듯하게 시범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두고 기교주의라고 빈정대는 견해도 있으나 그런 ‘기교주의’ 없이 시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20년대의 수많은 ‘편내용(偏內容) 주의’ 시편들이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

 

시인은 또 표제도 고친 경우가 많다. ‘해협(海峽)’은 ‘해협의 오전이시(午前二時)’를 고친 것이고 ‘태극선(太極扇)’은 ‘태극선에 날리는 꿈’을 고친 것이다.

‘무서운 시계’는 ‘오빠 가시고’를 고친 것이고 ‘지는 해’는 ‘서쪽 하늘’을 고친 것이다. 변개가 개악을 가져오는 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지용의 퇴고 과정을 보며 우리는 그 적정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국립국어원

새국어생활 118 제12권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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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중앙일보

 

 

 

 

슬픈 기차(汽車) / 정지용

 

 

우리들의 汽車[기차]는 아지랑이 남실거리는 섬나라 봄날 왼하로를 익살스런 마드로스 파이프로 피우며 간 단 다.

우리들의 汽車[기차]는 느으릿 느으릿 유월소 걸어가듯 걸어 간 단 다.

 

우리들의 汽車[기차]는 노오란 배추꽃 비탈밭 새로

헐레벌덕어리며 지나 간 단 다.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마음만은 가벼워

나는 車窓[차창]에 기댄 대로 희파람이나 날리쟈.

 

먼데 산이 軍馬[군마]처럼 뛰여오고 가까운데 수풀이 바람처럼 불려 가고

유리판을 펼친듯, 瀨戶內海[뢰호내해] 퍼언한 물 물. 물. 물.

손까락을 담그면 葡萄[포도]빛이 들으렸다.

 

입술에 적시면 炭酸水[탄산수]처럼 끓으렸다.

복스런 돛폭에 바람을 안고 웃배가 팽이 처럼 밀려가 다 간,

나비가 되여 날러간다.

 

나는 車窓[차창]에 기댄대로 옥토끼처럼 고마운 잠이나 들쟈.

靑[청]만틀 깃자락에 마담.R의 고달픈 뺨이 붉으레 피였다. 고은 石炭[석탄]불처럼 이글거린다.

당치도 않은 어린아이 잠재기 노래를 부르심은 무슨 뜻이뇨?

 

잠 들어라.

가여운 내 아들아.

잠 들어라.

 

나는 아들이 아닌것을, 옷수염 자리 잡혀가는, 어린 아들이 버얼서 아닌것을.

나는 유리쪽에 가깝한 입김을 비추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이나 그시며 가 쟈.

나는 늬긋 늬긋한 가슴을 蜜柑[밀감]쪽으로나 씻어나리쟈.

 

대수풀 울타리마다 妖艶[요염]한 官能[관능]과 같은 紅椿[홍춘]이 피맺혀 있다.

마당마다 솜병아리 털이 폭신 폭신 하고,

집웅마다 연기도 아니뵈는 해ㅅ볕이 타고 있다.

오오, 개인 날세야, 사랑과 같은 어질머리야, 어질머리야.

 

靑[청]만틀 깃자락에 마담 R의 가여운 입술이 여태껏 떨고 있다.

누나다운 입술을 오늘이야 싫것 절하며 갑노라.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나마,

오오, 나는 차보다 더 날러 가랴지는 아니하랸다.

 

 

 

비로봉(毘盧峯) 

 

백화(白樺)수풀 앙당한 속에

계절(季節)이 쪼그리고 있다.

 

이곳은 육체(肉體)없는 요적(寥寂)한 향연장(饗宴場)

이마에 시며드는 향료(香料)로운 자양(滋養)!

 

해발(海拔) 오천(五千) 피이트 권운층(卷雲層) 우에

그싯는 성냥불!

 

동해(東海)는 푸른 삽화(揷畵)처럼 옴직 않고

누뤼 알이 참벌처럼 옴겨 간다.

 

연정(戀情)은 그림자 마자 벗쟈

산드랗게 얼어라! 귀뜨람이 처럼.

 

 

 

 

해협(海峽) / 정지용

 

포탄으로 뚫은 듯 동그란 선창으로

눈썹까지 부풀어오른 수평이 엿보고

 

하늘이 함푹 나려 앉어

크낙한 암탉처럼 품고 있었다.

 

투명한 어족이 행렬하는 위치에

흣하게 차지한 나의 자리여

 

망토 깃에 솟은 귀는 소라ㅅ속 같이

소란한 무인도의 각적을 불고 --

 

해협 오전 두시의 고독은 오봇한 원광(圓光)을 쓰다.

서러울 리 없는 눈물을 소녀처럼 짖자

 

나의 청춘은 나의 조국!

다음날 항구의 개인 날세여

 

항해는 정히 연애처럼 비등하고

이제 어드매쯤 한밤의 태양이 피어오른다.

 

 

 

다시 海峽 / 정지용

 

정오(定午) 가까운 해협(海峽)은

백묵흔적(白墨痕跡)이 적력(的歷)한 원주(圓周) !

 

마스크 끝에 붉은 기(旗)가 하늘보다 곱다.

감람(甘藍) 포기포기 솟아오르듯 무성(茂盛)한 물이랑이어!

 

반마(班馬)같이 해구(海狗)같이 어여쁜 섬들이 달려오건만

일일(一一)히 만저주지 않고 지나가다.

 

해협(海峽)이 물거울 쓰러지듯 휘뚝하였다.

해협(海峽)은 업지러지지 않었다.

 

지구(地球) 우로 기여가는 것이

이다지도 호수운 것이냐!

 

외진 곳 지날 제 기적(汽笛)은 무서워서 운다.

당나귀처럼 처량(凄凉)하구나.

 

해협(海峽)의 칠월(七月)해ㅅ살은

달빛보담 시원타.

 

화통(火筒)옆 사닥다리에 나란히

제주도(濟州道)사투리 하는 이와 아주 친했다.

수물 한 살적 첫 항로(航路)에

연애(戀愛)보담 담배를 먼저 배웠다.

 

 

的歷한  : 또렷한

甘藍 : 양배추. 감람나무.

班馬 : 뿔뿔히 흩어진 말.

 

 

 

1.離群的馬。흩어진 무리의 말

左傳·襄公十八年:「邢伯告中行伯曰:『有班馬之聲,齊師其遁。』」

唐·李白·送友人詩:「揮手自茲去,蕭蕭班馬鳴。」

 이제 떠나려 손을 흔드니  긴 말울음소리가 애처럽구나

 

2.漢班固和司馬遷的合稱。한나라 반고와 사마천을 같이 부르는 명칭

晉書·卷八十二·陳壽傳·史臣曰:「丘明既沒,班馬迭興,奮鴻筆於西京;騁直詞於東觀。」

亦作「馬班」。

斑馬 : 얼룩말

 

5蕭蕭-馬鳴聲。

6「班馬」鳴-離群的馬。班,別也、離也。

 

 

 

 

 

送友人 / 李白

 

青山橫北郭,白水繞東城。

此地一為別,孤蓬萬里征。

浮雲游子意,落日故人情。

揮手自茲去,蕭蕭班馬鳴。

 

청산은 성밖 북쪽을 가르고

백수는 성 동쪽을 흐르는데

여기서 한번 이별하면

외롭게 홀로 만리를 떠나니

뜬구름은 나그네 마음이요

지는 해는 옛사람의 정이구나

손 저어 이별하니

긴 말울음소리가 애처롭다

 

 

孤蓬:蓬草遇風吹散  쑥(잡초)가 바람에 흩어지는 것.

蓬 쑥 봉. 잡초.쑥. 5. 흐트러지다 6. 떠돌아다니다   孤蓬 민망초.비봉.

孤蓬 : 孤蓬自振,惊砂坐飞 : 외로운 쑥대 절로 흔들리고, 놀란 모래 까닭 없이 흩날리네. (鲍照 《芜城赋》)

班馬: 마지막 구는 시경의 거공(車攻)에 소소마명(蕭蕭馬鳴)이 나오는데 시인이 "班" 한자(一字)를 더 넣었다.

특별히 새로운 말이 나온것은 특정한 신분과 부합하여 정의(情誼)가 두터워 헤어지기 어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반班"은 헤어진다는 뜻이고, 반마(班馬)는 무리에서 떨어진 말이다. 소소(蕭蕭)는 말 울음소리가 애처로운 것이다.

 

最後一句出自《詩經·車攻》『蕭蕭馬鳴』。但詩人只加一『班』字,便頓出新意,既符合特定的身份,又烘托出繾綣情誼。『班』,是離別的意思,『班馬』,就是離群之馬。『蕭蕭』,馬嘶鳴聲。

繾綣之情 견권지정 : 마음속에 굳게 맺혀 잊혀 지지 않는 정. 견권(繾綣)한 정(情)

 

 

 

【題 解】

《送友人》是一首五律詩,為李白有名的送別詩。至于送何人,作于何時,不詳。

 

 

句 解

 

青山橫北郭,白水繞東城

 

青翠的山巒橫亙在外城的北面,波光粼粼的河水繞城東流過。

『郭』,指外城。

朋友遠行,詩人從城內一直送到城外。

放眼遠望,青山迎面撲來。山鬱鬱蔥蔥,大概不會太高,但綿延甚廣,所以說『橫』。

對于即將遠行的人來說,有山高路遠、崎嶇艱難之意。近看,流水潺潺,繞城而去。水本無色,但在陽光照耀下,波光粼粼,所以說『白水』。古人常以流水比喻離情別意,流水繞城,似有留戀之意。

 

這兩句,『青山』無言,『白水』有聲,對偶工穩,而且『青』、『白』相間,色彩明麗,呈現出一幅寥廓秀麗的圖景。

 

此地一為別,孤蓬萬里征

 

在這里一分別,你就孤身一人,踏上萬里征程,猶如那隨風而飛的蓬蒿,漂泊天涯

詩人見朋友孤身遠行,不知道前行的路上,是否順利平安,因此心中充滿了對他的深切關懷。

『孤蓬』,孤飛的蓬蒿。蓬蒿秋天枯萎時常被風拔起,飄轉無定,古詩文常以之比喻身世飄零、遠行無依之人

 

如果按嚴格的格律要求,律詩的二、三兩聯是必須對仗的,可是這一聯中的『一為』對『萬里』卻並不工整,因為『為』是虛字,而『里』是實詞,這種詞性不盡相同的對仗,在後來,特別是晚唐的律詩中都是盡量避免的,而在這里,詩人不拘泥于對仗,落筆舒暢自然。

 

浮雲游子意,落日故人情

 

白雲飄浮,不知從哪里來,也不知要到哪里去,有時停一停,有時隨風而散。在外漂泊的游子,和浮雲一樣行蹤不定。夕陽徐徐西下,似乎不忍遽然離開大地。人們在欣賞落日時,也有戀戀不舍之意,生怕它早早地落下。這不正像詩人與朋友依依惜別的心情嗎?『浮雲』、『落日』,是古詩中有著特定情感內容的比興意象,在這里,也有可能就是眼前景。

 

這一聯寫得十分工整,『浮雲』對『落日』,『游子意』對『故人情』。詩人把漢魏以來詩歌中的典型意象和生活實感結合起來,嫻熟地掌握了傳統文化積澱的意蘊,在妙手偶得之間留下了令人咀嚼的雋永韻味。清人仇兆鰲評論說,太白詩『浮雲游子意,落日故人情』對景懷人,意味深遠。

 

揮手自茲去,蕭蕭班馬

 

朋友揮一揮手,從這里遠去,那馬兒似也不忍離別而蕭蕭長鳴。揮手告別,是人之常情,但詩人要表達的,同時也更有意味的是後一句。友人的馬見人揮手道別,似乎也懂得人的心意,忍不住蕭蕭長鳴。它是像主人那樣,向朋友致意道別麼?或者說,它是不忍分別,別情難抑?

詩人在寫分手的最後場面時,沒有直接說出自己的感受,而是以物來襯。馬猶如此,人何以堪!

最後一句出自《詩經·車攻》『蕭蕭馬鳴』。但詩人只加一『班』字,便頓出新意,既符合特定的身份,又烘托出繾綣情誼。『班』,是離別的意思,『班馬』,就是離群之馬。『蕭蕭』,馬嘶鳴聲。

 

評 解

 

在詩歌意象上,李白總是不拘泥于細末,經常攬大景物,用亮色調。他眼望青山,遙想萬里,目接長空。他似乎總是在極目遠望,將一顆詩人的心與天地融合。青山流水、落日白雲、班馬長鳴,自然美與人情美交織在一起,使這首送別詩情景交融,充滿詩情畫意,同時帶有幾分蒼涼的色調。全詩語言自然樸素,不事誇飾,而意致纏綿,語近情遙,有弦外之音,讀之令人神往。

 

自始至終,我們都不知詩人所送的友人是誰,也許正因如此,讓人更覺韻味無窮。因為不局限于某人某事,就留下了很大的欣賞與想象空間。

 

 

譯文:

蒼山翠嶺橫臥北城外,清澈的河水環繞東城流。此地一為別,你將如蓬草孤獨行萬里。遊子的行蹤似天上浮雲,落日難畱,縱有深深情誼。揮手告別,你我各奔東西。蕭蕭長嗚,馬匹也怨別離。

 

注釋:

①郭:外城。

②一:助詞,加強語氣。孤蓬:蓬草遇風吹散,飛轉無定,詩人常用來比喩遊子。徵:徵途。

茲:此,現在。蕭蕭:馬鳴聲。班馬:離群的馬。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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