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양희 시모음
1942년 부산생.
66년 이화여대국문과졸.
현대문학으로 데뷔(67)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시집<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등
● 바람 부는 날 : 천양희
바람 부는 날입니다. 숲그늘이 어룽대면서 계곡이 웅성거립니다. 바위는 입을 다문 채 물끄러미 물길을 배웅합니다. 절벽들이 오래 산허리를 꺾고 나뭇잎들의 속이 파랗게 질려 있습니다. 바람 잘 날 없는 것들의 하루가 길어집니다. 이젠 잡목숲에 머무르는 것이 두려워지지 않습니다. 아직 귀가하지 못한 사람들이 산길을 쓸며 지나갑니다. 한때의 낙엽들 썩었던 거, 땅 끝 어디로 쓸렸는지 발 한쪽을 헛디딥니다. 언덕이 따라가는 산정은 높았으나 산자락 끌고 내려가는 물은 평등합니다. 지금까지 우릴 지켜낸 건 마음끼리 튼 길 이었습니다. 슬픔도 친숙해지면 불행 속에서도 기뻐하는 자 있을 것입니다. 능선을 타고 골수까지 찌르르 내려오는 찌르레기 소리 골짜기만큼 깊어어집니다. 제 깊은 속에 다 칭얼대는 새끼들을 품은 까닭입니다. 골이 너무 깊어 숨는 벌레들은 땅껍질을 뚫는 유지매미들을 모를 것입니다. 나는 둥근 새장 하나 등처럼 내다 걸고 기다립니다. 제 모양이 둥글어지길 기다리는 것이 너무 오래 기다린 사랑일 것입니다. 바람부는 날입니다. 웅웅거리는 삶의 송전탑 위로 하늘이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마을로 내려갈 것입니다. 살아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 한 자리 : 천양희
바람 불다 비가 와 햇빛이 솔밭 사이로
지나가버려
나무 뒤에 나무처럼 서서 새들은 어디 갔나
네 이름 묻고 싶구나 바람 불 때마다 천지에 나를 놓을?
나를 놓을 어디?
바람 부니 꽃이 져 꽃자리 살펴보던 때가
그냥 지나가버려
바위 위에 바위처럼 앉아
꽃들은 다 어디 갔나 네 이름 받고 싶구나
바람 불 때마다 천지에 내 마음 뿌릴?
마음 뿌릴 어디?
바람이여, 나는 너무 늦게
흔들린다 나도 가끔
세상 빠져나가고 싶은 바람이다
바람을 꽃처럼 피우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산 자로서
조용히 접혀 있다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산 넘어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강 건너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집까지 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그땐 그걸 위해 다른 것 다 버렸지요.
그땐 슬픔도 힘이 되었지요.
그 시간은 저 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 고하(高下)리 길 : 천양희
높고도 낮은 것이 무엇이었더라.
고하리에 멈추는 발길이여 산 한쪽이
나를 붙든다. 험하고 험한 것은 산만이
아니다 내 속의 구름들 계곡들.
고하리는 나를 알고 있는 듯
마음의 봉우리도 불끈 솟는다.
산은 갈수록 높기만 한데 산 끝 바위들은
오래 묵묵하다. 묵묵히 지나가는
바람소리 물소리, 그 소리 자유롭다.
새삼 느낀다.
내자리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운명에는 만약이란 없다.
산이 어디로 가는걸 보았는가.
산 그늘이 마을까지 따라온다.
따라온 길을 몰래 엿본다.
동고비새 한 마리 고비를타고 있다.
고비를 타는 것만이 힘든 것은 아니다.
오늘도 산은 높았다 낮았다 하였다.
다 저문 저녁에야 마음의 경계 너머
다른 산에 닿는다.
언제나 바짝 엎드린 능선길. 우린 오르면 내려가야 한다.
산맥을 가로질러 산 끝과 마음 끝이 가파
르게 선다. 높고도 낮은 것이
무엇이었더라 소리치며 메아리가
지나간다. 날마다 내 속에 쌓이는 산.
고하리 길에 풀어 놓는다.
● 스스로를 부르다 : 천양희
나무가 있는데 생김새가 닥나무와 같으며 결이 검고 그 꽃은 사방을 비춘다 그것의 이름을 미곡(米穀)이라 하여 차고 다니면 미혹되지 않는다 새가 있는데, 생김새가 올빼미와 같고 머리가 희다 그 이름을 황조(黃鳥)라 하는데 그 울음이 스스로를 부른다 이것을 먹으면 질투하지 않는다
(그 울음이 스스로를 부른다고? 그 꽃이 사방을 비춘다고? 미혹되지 않는다고? 질투하지 않는다고?)
어느덧 내 눈에서 새가 울고 있군요
어느새 내 눈에서 꽃이 피어났군요.
>> 이 시는『산해경』을 패러디한 것임
● 허기 : 천양희
너와 둘이 있을 때 외롭지 않으려고
나는 너를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았다.
갈 데 없는 마음이 오늘은 혼자 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외로움이 더 덤빈다.
그래서 밥을 많이 먹어본다. 밥을 먹고 돌아서도
허기가 진다. 허기가 지면 나는 우울에 빠진다.
어느 땐 우울이 우물처럼 깊다.
● 화석 : 천양희
내 가슴에 네가 피어날 때
아이 웃음 같은 앵초꽃 핀다.
내 눈에 네 눈동자 박힐 때
함박 웃음 같은 갈대꽃 핀다.
꽃 꺽어들 듯 널 꺽어들고
만년설 속에 앉아 있으면
난 천 년 묵은 화석 되리.
● 하루 : 천양희
오늘 하루가 너무 길어서
나는 잠시 나를 내려 놓았다.
어디서 너마저도
너를 내려놓았느냐.
그렇게 했느냐.
귀뚜라미처럼 찌르륵대는 밤
아무도 그립지 않다고 거짓말하면서
그 거짓말로 나는 나를 지킨다.
● 몽산포 : 천양희
마음이 늦게 포구에 가 닿는다
언제 내 몸 속에 들어와 흔드리는 해송들
바다에 왠 몽산(夢山)이 있냐고 중얼거린다
내가 그 근처에 머물 때는
세상을 가리켜 푸르다 하였으나
기억은 왜 기억만큼 믿을 것이 없게 하고
꿈은 또 왜 꿈으로만 끝나는가
여기가지 와서 나는 다시 몽롱해진다
생각은 때로 해변의 구석까지 붙잡기도 하고
하류로 가는 길을 지우기도 하지만
살아 있어, 깊은 물 소리 듣지 못한다면
어떤 생(生)이 저 파도를 밀어 가겠는가
헐렁해진 해안선이 나를 당긴다
두근거리며 나는 수평선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부풀었던 돛들, 붉은 게들 밀물처럼 빠져 나가고
이제 몽산은 없다. 없으므로
갯벌초차 천천히 발자욱을 거둔다
● 비오는 날 : 천양희
플라타너스 잎새 끝의 빗방울
나는 조바심을 한다
내 후회는 두텁고 무겁다
플라타너스 잎새 끝의 물방울, 조바심을 한다
내 눈썹 끝의 물방울
벌써 수위가 넘었군.
● 흐린 날 : 천양희
생각이 먼저 기슭에 닿는다. 강 한쪽이 어깨를 들어올린다. 下端이 저 아랜가. 문득 갈대숲에서 물떼새들이 달려나온다. 여름이 가는군. 나보다 먼저 바다로 든 길이 중얼거린다. 언제 내가 길 하나 가졌던가. 물줄기를 한참 당기면 마음에 들어와 걸리는 수평선. 세상이 평등하기를 저것이 말해준다. 이런 날은 물가에 오래 앉을 수 있겠다. 물에도 길이 있다고 하였으나 물방개,소금쟁이, 물잠자리들, 물이 좋아 물 먹고 산다는 것일까.나는 꿈속에서도 어안이 벙벙한 물고기들을 보았다. 물의 세계란 그런 것일까. 물까지도 한 잔의 물 속에선 흐르지 않는다.나는 또 자주 쓴풀 몇 포기 뽑아 잘근잘근 씹는다. 산다는 건 자주 쓴맛을 보는 것이라던 선배의 말이 오늘은 옳았다.
●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千佛山이
품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1942년 부산생.
66년 이화여대국문과졸.
현대문학으로 데뷔(67)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시집<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등
● 바람 부는 날 : 천양희
바람 부는 날입니다. 숲그늘이 어룽대면서 계곡이 웅성거립니다. 바위는 입을 다문 채 물끄러미 물길을 배웅합니다. 절벽들이 오래 산허리를 꺾고 나뭇잎들의 속이 파랗게 질려 있습니다. 바람 잘 날 없는 것들의 하루가 길어집니다. 이젠 잡목숲에 머무르는 것이 두려워지지 않습니다. 아직 귀가하지 못한 사람들이 산길을 쓸며 지나갑니다. 한때의 낙엽들 썩었던 거, 땅 끝 어디로 쓸렸는지 발 한쪽을 헛디딥니다. 언덕이 따라가는 산정은 높았으나 산자락 끌고 내려가는 물은 평등합니다. 지금까지 우릴 지켜낸 건 마음끼리 튼 길 이었습니다. 슬픔도 친숙해지면 불행 속에서도 기뻐하는 자 있을 것입니다. 능선을 타고 골수까지 찌르르 내려오는 찌르레기 소리 골짜기만큼 깊어어집니다. 제 깊은 속에 다 칭얼대는 새끼들을 품은 까닭입니다. 골이 너무 깊어 숨는 벌레들은 땅껍질을 뚫는 유지매미들을 모를 것입니다. 나는 둥근 새장 하나 등처럼 내다 걸고 기다립니다. 제 모양이 둥글어지길 기다리는 것이 너무 오래 기다린 사랑일 것입니다. 바람부는 날입니다. 웅웅거리는 삶의 송전탑 위로 하늘이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마을로 내려갈 것입니다. 살아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 한 자리 : 천양희
바람 불다 비가 와 햇빛이 솔밭 사이로
지나가버려
나무 뒤에 나무처럼 서서 새들은 어디 갔나
네 이름 묻고 싶구나 바람 불 때마다 천지에 나를 놓을?
나를 놓을 어디?
바람 부니 꽃이 져 꽃자리 살펴보던 때가
그냥 지나가버려
바위 위에 바위처럼 앉아
꽃들은 다 어디 갔나 네 이름 받고 싶구나
바람 불 때마다 천지에 내 마음 뿌릴?
마음 뿌릴 어디?
바람이여, 나는 너무 늦게
흔들린다 나도 가끔
세상 빠져나가고 싶은 바람이다
바람을 꽃처럼 피우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산 자로서
조용히 접혀 있다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산 넘어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강 건너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집까지 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그땐 그걸 위해 다른 것 다 버렸지요.
그땐 슬픔도 힘이 되었지요.
그 시간은 저 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 고하(高下)리 길 : 천양희
높고도 낮은 것이 무엇이었더라.
고하리에 멈추는 발길이여 산 한쪽이
나를 붙든다. 험하고 험한 것은 산만이
아니다 내 속의 구름들 계곡들.
고하리는 나를 알고 있는 듯
마음의 봉우리도 불끈 솟는다.
산은 갈수록 높기만 한데 산 끝 바위들은
오래 묵묵하다. 묵묵히 지나가는
바람소리 물소리, 그 소리 자유롭다.
새삼 느낀다.
내자리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운명에는 만약이란 없다.
산이 어디로 가는걸 보았는가.
산 그늘이 마을까지 따라온다.
따라온 길을 몰래 엿본다.
동고비새 한 마리 고비를타고 있다.
고비를 타는 것만이 힘든 것은 아니다.
오늘도 산은 높았다 낮았다 하였다.
다 저문 저녁에야 마음의 경계 너머
다른 산에 닿는다.
언제나 바짝 엎드린 능선길. 우린 오르면 내려가야 한다.
산맥을 가로질러 산 끝과 마음 끝이 가파
르게 선다. 높고도 낮은 것이
무엇이었더라 소리치며 메아리가
지나간다. 날마다 내 속에 쌓이는 산.
고하리 길에 풀어 놓는다.
● 스스로를 부르다 : 천양희
나무가 있는데 생김새가 닥나무와 같으며 결이 검고 그 꽃은 사방을 비춘다 그것의 이름을 미곡(米穀)이라 하여 차고 다니면 미혹되지 않는다 새가 있는데, 생김새가 올빼미와 같고 머리가 희다 그 이름을 황조(黃鳥)라 하는데 그 울음이 스스로를 부른다 이것을 먹으면 질투하지 않는다
(그 울음이 스스로를 부른다고? 그 꽃이 사방을 비춘다고? 미혹되지 않는다고? 질투하지 않는다고?)
어느덧 내 눈에서 새가 울고 있군요
어느새 내 눈에서 꽃이 피어났군요.
>> 이 시는『산해경』을 패러디한 것임
● 허기 : 천양희
너와 둘이 있을 때 외롭지 않으려고
나는 너를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았다.
갈 데 없는 마음이 오늘은 혼자 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외로움이 더 덤빈다.
그래서 밥을 많이 먹어본다. 밥을 먹고 돌아서도
허기가 진다. 허기가 지면 나는 우울에 빠진다.
어느 땐 우울이 우물처럼 깊다.
● 화석 : 천양희
내 가슴에 네가 피어날 때
아이 웃음 같은 앵초꽃 핀다.
내 눈에 네 눈동자 박힐 때
함박 웃음 같은 갈대꽃 핀다.
꽃 꺽어들 듯 널 꺽어들고
만년설 속에 앉아 있으면
난 천 년 묵은 화석 되리.
● 하루 : 천양희
오늘 하루가 너무 길어서
나는 잠시 나를 내려 놓았다.
어디서 너마저도
너를 내려놓았느냐.
그렇게 했느냐.
귀뚜라미처럼 찌르륵대는 밤
아무도 그립지 않다고 거짓말하면서
그 거짓말로 나는 나를 지킨다.
● 몽산포 : 천양희
마음이 늦게 포구에 가 닿는다
언제 내 몸 속에 들어와 흔드리는 해송들
바다에 왠 몽산(夢山)이 있냐고 중얼거린다
내가 그 근처에 머물 때는
세상을 가리켜 푸르다 하였으나
기억은 왜 기억만큼 믿을 것이 없게 하고
꿈은 또 왜 꿈으로만 끝나는가
여기가지 와서 나는 다시 몽롱해진다
생각은 때로 해변의 구석까지 붙잡기도 하고
하류로 가는 길을 지우기도 하지만
살아 있어, 깊은 물 소리 듣지 못한다면
어떤 생(生)이 저 파도를 밀어 가겠는가
헐렁해진 해안선이 나를 당긴다
두근거리며 나는 수평선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부풀었던 돛들, 붉은 게들 밀물처럼 빠져 나가고
이제 몽산은 없다. 없으므로
갯벌초차 천천히 발자욱을 거둔다
● 비오는 날 : 천양희
플라타너스 잎새 끝의 빗방울
나는 조바심을 한다
내 후회는 두텁고 무겁다
플라타너스 잎새 끝의 물방울, 조바심을 한다
내 눈썹 끝의 물방울
벌써 수위가 넘었군.
● 흐린 날 : 천양희
생각이 먼저 기슭에 닿는다. 강 한쪽이 어깨를 들어올린다. 下端이 저 아랜가. 문득 갈대숲에서 물떼새들이 달려나온다. 여름이 가는군. 나보다 먼저 바다로 든 길이 중얼거린다. 언제 내가 길 하나 가졌던가. 물줄기를 한참 당기면 마음에 들어와 걸리는 수평선. 세상이 평등하기를 저것이 말해준다. 이런 날은 물가에 오래 앉을 수 있겠다. 물에도 길이 있다고 하였으나 물방개,소금쟁이, 물잠자리들, 물이 좋아 물 먹고 산다는 것일까.나는 꿈속에서도 어안이 벙벙한 물고기들을 보았다. 물의 세계란 그런 것일까. 물까지도 한 잔의 물 속에선 흐르지 않는다.나는 또 자주 쓴풀 몇 포기 뽑아 잘근잘근 씹는다. 산다는 건 자주 쓴맛을 보는 것이라던 선배의 말이 오늘은 옳았다.
● 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千佛山이
품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출처 : 휘수(徽隋)의 공간
글쓴이 : 휘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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