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詩세계 시대가 왜곡" 80년대 현실주의 잣대로 `퇴폐적` 낙인은 잘못
(::평론가 유희석씨 '창작과 비평' 서 주장::)“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문득 거리를빠르게 스쳐가는 日常의 恐怖/보여다오.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살아 있는 그대여.”(기형도 ‘노을’일부)‘입속의 거문 잎’의 기형도(1960∼1989)는 ‘요절시인’이란인상에 겹쳐 ‘퇴폐적’ 이미지만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80년대 ‘현실주의’의 과잉 속에서 ‘세기말적’이라는왜곡된 누명을 썼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학평론가 유희석(인디애나대학 방문연구원)은 ‘창작과비평’겨울호에 실린 ‘기형도와 1980년대’란 글을 통해 그의 시를 ‘당시의 문맥’으로 돌려보내 본래 생명을 되살리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기형도는 80년대 중·후반에 작품을 썼지만 혁명의시대였던 ‘80년대 시인’으로 분류하진 않는다. 그의 요절 이후나온 비평들이 ‘나약하고 퇴폐적인’ 인상들만 남겨놓았다는 것.
소위 80년대에 대해 신경림은 ‘시인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당시 일부 민중시인들이 분단이나 노동문제 같은 주제만 다루면 다 시(詩)가 된다는 잣대에 따라 불량품을 대량생산”하기도했으며 “과연 그 중 문학사에 남을 시가 몇편이나 될까”라고지적했었다.
어쨌든 시의 황금기였던 그 시절 민족문학이란 잣대에 맞지 않는작품은 묵살되거나 왜곡됐는데, 그 반대편에 선 평자들 역시 다른 의미에서 시적 성취들을 바로 보는데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유희석은 그런 비평의 진원지로 김현의 비평(‘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한 젊은 시인을 위한 진혼가’)을 꼽는다. 김현은 기형도의 시세계를 ‘도저한 부정적 세계관’으로 집약해 버렸다. 이는 “(김현이)당시 문단의 대세인 현실주의 문학의 도식성을 겨냥한 것”이지만 “그 정의 자체가 역설적으로 현실주의의 기계적 반동(反動)”이라고 필자는 비판한다. 현실주의의 반대편에서도기형도를 정확히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희석은 기형도의 전 시편을 꼼꼼히 다시 읽는 작업을 통해 ‘기형도 특유의 감수성이 8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만나서’ 빚어내는, ‘계급투쟁’도 아니지만 ‘퇴폐’는 더욱 아닌 그만의 올곧은 정서를 솎아내고 있다.
‘위험한 가계(家系)·1969’(1986)에 드러나는 궁핍한 체험은가정사로 한정되지 않는 그 시대의 ‘공적 정서’였으며 80년대노동시에 못지 않은 가족시편이었고, ‘빈집’(1989)에서의 “잘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라는 시인의 절규는 “감상의 산물이 아니라 6·10항쟁으로 기억되는 민주주의의 승리가 혁혁할수록 그 뒤안길에서 상처입은 마음을 기록하는” 절박함이었다.
특히 시작시점이 1981년 9월로 명시된 ‘노을’은 “5·18 이후침묵에 빠져든 지식인 사회”에 대한 통절한 외침이다.
유희석은 기형도의 일련의 시는 “예술을 변혁운동에 동원하는시대일수록 잊기 쉬운 참다운 ‘있음’과 시의 무기력화·왜소화에 대한 성찰의 산물”이라고 평가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90년대‘기형도 붐’역시 이데올로기 붕괴 이후 “진지한 변혁의 고투를 부정하는 풍조에서”나온 것으로 기형도 유산의 알맹이와 그계승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고 있다.
엄주엽기자 3Dejyeob@munhwa.co.kr
ⓒ[문화일보 2003/11/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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